모든 예술가들은 작품마다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을 투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의 작품 중에 가치관과 철학이 넘치다 못해 어떤 의도였을까라는 상상으로 며칠 밤을 보내도 헤아리기 어려운 작품이 있습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고대 철학자 수학자 지식인 예술가들이 한 곳에 모여 균형과 질서를 이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무엇이었을까 궁금증이 폭발하게 하는 아테네 학당의 스토리를 조목조목 뜯어보려 합니다.
실제로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한 공간에 모으다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로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았습니다.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경 태어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생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만 200년 가까운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유클리드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후대 사람이고 이슬람 학자 아베로에스는 12세기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수천 년에 걸친 인류 지식의 계보를 한 화면에 압축한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느 한 철학자나 사상가가 옳다는 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온 모든 지적 탐구가 하나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선언입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지식의 계보 전체를 한 공간에 담은 것이 아테네 학당의 첫 번째 의도입니다.
중앙의 두 인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
화면 중앙에는 두 인물이 나란히 걸어오고 있습니다. 주황색 망토를 입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인물이 플라톤입니다. 왼손에는 자신의 저서 티마이오스를 들고 있습니다. 하늘을 가리키는 제스처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상징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그 너머의 이상적 세계가 진짜라는 철학입니다. 옆에서 파란 망토를 입고 손바닥을 땅을 향해 펼치고 있는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손에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있습니다. 땅을 향한 손은 현실과 경험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을 표현합니다. 하늘과 땅, 이상과 현실, 관념과 경험.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이 두 제스처의 대비는 서양 철학의 양대 축을 한 순간에 시각화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얼굴은 라파엘로가 가장 존경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입니다. 당대 최고의 천재에게 고대 최고의 철학자 얼굴을 빌려준 것입니다.
혼자 앉아 사색하는 인물, 헤라클레이토스의 얼굴이 미켈란젤로인 이유
화면 중앙 계단 앞에 홀로 앉아 팔꿈치를 괴고 사색에 잠긴 인물이 있습니다. 만물은 변한다는 철학으로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입니다. 그런데 이 인물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입니다. 라파엘로가 왜 헤라클레이토스에 미켈란젤로 얼굴을 넣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바로 옆 시스티나 성당에서 천장화 작업 중이었습니다. 라파엘로는 그 작업을 몰래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고독하게 홀로 앉아 사색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모습이 당시 혼자 거대한 작업과 씨름하던 미켈란젤로와 겹쳐 보였을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는 경쟁자였지만 라파엘로는 이 방식으로 미켈란젤로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였습니다.
화면 곳곳에 숨어있는 인물들
아테네 학당에는 총 58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왼쪽 하단에서 책을 펼쳐놓고 수학적 계산을 기록하는 인물은 피타고라스입니다. 수학적 우주의 조화를 상징하는 자세입니다. 올리브빛 옷을 입고 왼쪽에 서서 여러 사람과 활발하게 토론하는 인물은 소크라테스입니다. 그의 대화법을 그대로 표현한 자세입니다. 오른쪽 하단에서 컴퍼스로 바닥에 기하학 도형을 그리며 설명하는 인물은 유클리드입니다. 유클리드의 얼굴은 라파엘로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브라만테의 얼굴로 그려졌습니다. 터번을 쓴 이슬람 학자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아랍어로 번역해 유럽에 전달한 아베로에스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이슬람 학자가 서양 철학의 계보 속에 포함된 것은 라파엘로가 지식의 전통을 특정 문화권에 한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라파엘로 자신도 그림 속에 있다
아테네 학당 오른쪽 하단을 자세히 보면 검은 모자를 쓰고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라파엘로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화가가 자신을 작품 속에 넣는 것은 자신도 이 지식의 계보에 속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보티첼리도 동방박사의 경배에 자신의 얼굴을 넣었고 미켈란젤로도 시스티나 천장화에 자신을 담았습니다. 라파엘로는 수천 년 인류 지식의 총합을 그린 이 작품에 자신을 조용히 끼워 넣음으로써 나도 이 위대한 전통의 일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관람자를 바라봅니다. 마치 관람자 당신도 이 지식의 계보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처럼요.
소실점 하나로 수십 명을 통제하는 원근법의 완성
아테네 학당은 1점 투시 원근법이 완벽하게 구현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화면 전체의 소실점은 단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소실점이 정확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 위치합니다. 바닥의 체크무늬 타일 선, 천장 아치의 곡선, 벽면의 수직선이 모두 화면 중앙의 두 인물을 향해 수렴합니다. 관람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두 인물에게 집중되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원근법을 이렇게 완벽하게 구현한 사례는 드뭅니다. 수십 명의 인물이 화면에 가득 차 있는데도 혼란스럽지 않고 오히려 웅장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 하나의 소실점 덕분입니다. 모든 혼돈이 하나의 질서로 수렴되는 것처럼 모든 지식이 결국 하나의 진리로 향한다는 철학적 메시지와도 겹쳐집니다.
실제로 짓고 있던 성당을 배경으로 그리다
아테네 학당의 배경 건축 공간은 라파엘로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가상의 공간에는 실제 모델이 있습니다.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을 그리던 1509년 당시 건축가 브라만테는 바로 옆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하고 공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라파엘로는 그 성당의 내부 공간을 모티브로 삼아 철학이 이루어지는 이상적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거대한 반원형 아치가 겹겹이 이어지며 화면 안쪽으로 깊이감을 만들어내고 돔 구조가 공간에 웅장함을 부여합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건축과 회화가 이처럼 긴밀하게 결합된 사례는 아테네 학당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유클리드의 얼굴을 브라만테로 그려 넣음으로써 이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에 대한 경의까지 담았습니다.
좌우 대칭이 만드는 철학적 질서
아테네 학당의 인물 배치는 단순히 많은 사람을 모아둔 것이 아닙니다. 정교한 철학적 질서에 따라 설계되어 있습니다. 화면 왼쪽은 플라톤 계열의 이상주의 철학자들이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은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현실주의 철학자들이 자리합니다.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땅을 향해 손을 펼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두 철학 전통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균형을 형성합니다. 화면 양쪽 기둥에는 두 석상이 있습니다. 왼쪽이 아폴론이고 오른쪽이 아테나입니다. 아폴론은 예술과 이성을 상징하고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을 상징합니다. 두 신이 철학자들의 토론 공간을 수호하는 형태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이처럼 철학적 사상과 조형적 구성이 하나로 통합된 작품은 아테네 학당이 독보적입니다.
수십 명이 등장하는데 산만하지 않은 이유
아테네 학당에는 5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화면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1점 투시 원근법으로 모든 선이 중앙을 향해 수렴하면서 시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통제됩니다. 둘째 인물들이 계단을 중심으로 전경과 중경과 원경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공간의 깊이가 생깁니다. 가까운 인물은 크게 먼 인물은 작게 그려지면서 단축법이 자연스럽게 적용되어 있습니다. 셋째 좌우 대칭 구성이 전체 화면에 안정감을 부여합니다. 라파엘로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안정적인 화면 구성을 배웠고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에서 역동적인 인물 표현을 흡수하였습니다. 그 두 가지를 결합하여 역동적이면서도 안정적인 구성을 만들어낸 것이 아테네 학당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라파엘로가 27세에 이 작업을 완성했다는 것이 여전히 놀라운 이유입니다.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아테네 학당은 1509년부터 1511년 사이에 제작되었습니다. 라파엘로의 나이 불과 26세였습니다. 가로 770센티미터, 세로 540센티미터의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26세 청년이 완성한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라파엘로가 이 작품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입니다.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온 모든 지식과 지혜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위대한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이상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 동양과 서양, 수학과 철학, 고대와 현재가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다빈치의 얼굴과 미켈란젤로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넣음으로써 지금 이 시대도 그 위대한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26세 청년이 담기에는 너무 큰 생각이었지만 라파엘로는 해냈습니다.
| 인물 | 위치와 자세 | 상징하는 의미 | 얼굴 모델 |
|---|---|---|---|
| 플라톤 | 중앙, 하늘을 가리킴 | 이데아 이상주의 철학 | 레오나르도 다빈치 |
| 아리스토텔레스 | 중앙, 땅을 향해 손 펼침 | 현실·경험 중심 철학 | – |
| 헤라클레이토스 | 계단 앞 홀로 사색 | 철학적 고독과 사유 | 미켈란젤로 |
| 소크라테스 | 왼쪽, 토론 중 | 대화법·질문의 철학 | – |
| 유클리드 | 오른쪽 하단, 컴퍼스 | 기하학·수학적 질서 | 브라만테 |
| 라파엘로 | 오른쪽 하단, 관람자 응시 | 지식 전통의 계승자 | 라파엘로 자화상 |
자주 묻는 질문 (Q&A)
1.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같은 시대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드, 아베로에스까지 수천 년에 걸친 인물들입니다. 라파엘로는 시간을 초월해서 인류 지식의 계보 전체를 한 화면에 담았습니다.
2. 플라톤의 얼굴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게 사실인가요?
미술사학자들이 유력하게 인정하는 해석입니다. 라파엘로가 가장 존경했던 당대 최고의 천재 다빈치의 얼굴을 고대 최고의 철학자 플라톤에게 빌려준 것으로 해석됩니다.
3. 헤라클레이토스가 미켈란젤로 얼굴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 미켈란젤로는 바로 옆 시스티나 성당에서 혼자 거대한 천장화 작업 중이었습니다. 홀로 사색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모습이 그 상황과 겹쳐 보였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경쟁자이면서도 경의를 표한 방식이었습니다.
4. 라파엘로는 왜 자신을 그림 속에 넣었나요?
수천 년 인류 지식의 총합을 담은 이 작품에 자신을 넣음으로써 자신도 이 위대한 지식 전통의 일부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관람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관람자도 그 전통에 속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5. 아테네 학당은 언제 어디에 그려졌나요?
1509년부터 1511년 사이에 바티칸 궁전 내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 벽면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당시 라파엘로의 나이는 26세였으며 가로 770센티미터, 세로 540센티미터의 거대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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