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사: 원근법에 미친 화가 파올로 우첼로

르네상스 미술사 초기 브루넬레스키가 발견한 원근법은 우첼로에게 큰 혁명과도 같았는지, 그는 거의 모든 작품에 원근법을 담았고 ‘산 로마노 전투’에서는 초기 단축법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보다 약 40년 앞선 표현입니다. 고딕의 투박함과 화려한 색채가 어우러진 독특한 화풍을 지녔던 그는 가난한 생을 마감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재조명된 비운의 예술가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파올로 우첼로의 일화와 작품, 철학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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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적 없는 것을 그리던 시대, 의문이 생기다

르네상스 미술사 이전 화가들에게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카메라도 거울도 흔하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가까운 사물과 먼 사물이 실제로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알고 있는 대로, 또는 중요한 정도에 따라 인물의 크기를 정했습니다. 왕은 거리와 무관하게 화면 가장 크게 그려졌고 평범한 사람은 아무리 앞에 서 있어도 작게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1420년경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에서 나무판과 거울을 들고 한 가지 실험을 합니다. 그림과 실제 풍경을 거울에 번갈아 비춰보며, 자신이 그린 그림이 실제 보이는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를 눈으로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상상이 아니라 측정된 법칙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피렌체의 화가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에 누구보다 깊이, 평생을 걸쳐 빠져버린 화가가 있었습니다. 파올로 우첼로였습니다.

새를 닮은 화가, 이발사의 아들에서 화가로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파올로 우첼로는 1397년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래 성은 디 도노였지만, 새를 너무도 좋아해 우첼로(Uccello, 이탈리아어로 ‘새’)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 이름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일설에는 그가 새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새라고 여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발사이자 외과의사였고, 우첼로 자신도 처음에는 외과의사와 약제사 조합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명망 높은 조각가였던 로렌초 기베르티의 작업실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게 됩니다. 1425년에는 베네치아로 건너가 산 마르코 대성당의 모자이크 장식 작업에 고용되기도 했습니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새의 이름을 얻고 조각가의 공방에서 그림을 배운 그의 이력은, 평범한 길을 가지 않을 운명이었던 한 사람의 출발점처럼 보입니다.

“오, 원근법의 아름다움이여!” 아내보다 사랑한 것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우첼로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일화가 있습니다. 16세기 미술사가 바사리가 쓴 〈예술가들의 생애〉에 따르면, 우첼로의 아내가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보면 남편은 잠들지 않고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그만 자고 침대로 오라고 하면 우첼로는 “오, 원근법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오!”라고 혼잣말처럼 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 아내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원근법이라고 밝힐 정도로 유별난 인물이었습니다. 동시대인들에게 그는 천재라기보다 괴짜로 비춰졌습니다. 그러나 그 집착은 단순한 기벽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인간이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수학으로 증명해낸 사건이었고, 우첼로는 그 사건의 의미를 너무 깊이 받아들인 사람이었습니다.

산 로마노 전투, 원근법과 단축법이 한 화면에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우첼로의 집착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 〈산 로마노 전투〉 3부작입니다. 1432년 피렌체가 시에나 군을 격파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데 메디치가 의뢰한 작품으로, 코시모는 이 세 점의 그림을 자신의 침실 벽에 나란히 걸어두었습니다. 그림 아래쪽을 보면 부러진 창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지점을 향해 모여 있습니다. 소실점을 이용한 선원근법을 구현한 장치입니다. 동시에 땅에 가로누운 병사와 말의 모습에서는 단축법, 즉 대상이 시선 방향으로 짧아지는 효과를 구사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서 있는 말들은 마치 회전목마처럼 정지된 듯 부자연스럽고, 멀리 있는 병사들은 작게 그려졌지만 지나치게 선명합니다. 당시에는 대기원근법, 즉 멀어질수록 색과 윤곽이 흐려지는 효과가 아직 완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원근법에 대한 열정이 오히려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역설을 낳은 셈입니다.

고딕의 화려함과 원근법의 충돌이 만든 독특한 화면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우첼로의 그림이 독특하게 보이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는 원근법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화려한 색채와 금박을 사용하는 고딕 양식의 장식적 전통을 끝내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마사초나 이후의 다빈치처럼 자연스러운 현실 공간을 만들어내기보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시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병사들은 화려한 갑옷을 입고 인형처럼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고, 들판은 장식적인 산울타리로 마치 무대 배경처럼 구획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기술에 집착하다 정작 현실감을 잃어버린 결과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색함과 화려함이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우첼로의 그림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묘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가난 속에 잊혀졌다가 다시 발견된 화가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우첼로의 말년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쓸쓸했습니다. 그는 의뢰받은 그림을 충실히 그리기보다 자신이 몰두한 원근법 연구를 우선시했고, 그 결과 경제적으로 점점 궁핍해졌습니다. 1469년 피렌체 세금 고지서 한 귀퉁이에는 그가 직접 남긴 메모가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이제 늙었고 병들었다. 내 아내는 아프고 나는 더 이상 일하기 벅차다.” 그의 사후 작품들은 흩어지고 평가도 점점 잊혀져, 한동안 미술사에서 거의 지워진 화가가 되었습니다. 〈산 로마노 전투〉 3부작조차 런던 내셔널 갤러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흩어진 채 두 세기가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우첼로는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법칙에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깊이 매혹되었던 한 화가의 흔적으로서 말입니다.

구분핵심 내용대표 작품 또는 일화르네상스 미술사적 의미
출생과 이름1397년 피렌체 출생, 새를 좋아해 우첼로로 불림이발사 겸 외과의사의 아들의외의 출신에서 시작된 화가의 길
원근법 집착아내보다 원근법을 더 사랑한다고 밝힘바사리의 〈예술가들의 생애〉 기록원근법의 충격을 가장 깊이 받아들인 인물
대표작선원근법과 단축법을 동시에 구사산 로마노 전투 3부작원근법 체계화와 보급의 핵심 화가
양식적 특징고딕의 장식성과 원근법이 공존화려한 색채와 도식적인 구성과도기적 르네상스 회화의 독특한 사례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우첼로가 남긴 것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우첼로는 가장 성공한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순수하게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발견에 몰두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가 발견하고 마사초가 그림으로 처음 구현한 원근법은, 우첼로의 손을 거치며 끊임없이 실험되고 체계화되어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함께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의 그림 속 회전목마처럼 멈춰선 말과 지나치게 선명한 원경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불완전함마저 한 시대가 새로운 시각 법칙을 받아들이던 과정의 생생한 증거로 남았습니다. 가난 속에 잊혀졌다가 수백 년 후 다시 발견된 그의 그림은, 새로운 것에 미쳐버린 한 사람의 진심이 결국 시간을 건너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1. 파올로 우첼로는 왜 새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렸나요?

본래 성은 디 도노였지만 새를 매우 좋아해 우첼로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이름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새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새라고 여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2. 우첼로가 원근법에 그토록 몰두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브루넬레스키가 거울과 나무판으로 원근법을 실제로 증명해 보이자, 우첼로는 그것이 상상이 아니라 측정된 법칙이라는 사실에 깊이 매혹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이 법칙을 그림에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 몰두하였습니다.

3. 산 로마노 전투는 어떤 작품인가요?

1432년 피렌체가 시에나 군을 격파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메디치 가문이 의뢰한 3부작입니다. 선원근법과 단축법을 동시에 구사한 작품으로, 현재 런던과 피렌체, 파리 세 곳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습니다.

4. 우첼로의 그림이 독특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근법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화려한 색채와 금박을 사용하는 고딕 양식의 장식적 전통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공간감보다 동화처럼 환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5. 우첼로는 왜 가난하게 생을 마감했나요?

의뢰받은 그림보다 자신이 몰두한 원근법 연구를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1469년 세금 고지서에 그가 직접 남긴 메모에는 늙고 병든 자신의 처지가 담겨 있으며, 사후 그의 작품과 평가는 한동안 잊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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