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사: 절대 권력 교회가 흔들리며 시작된 르네상스

3대 종교의 가장 의미 있는 거점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시작한 교황 우르바노 2세. 결국 실패로 끝나면서 정치 교육 윤리를 통합하는 절대 권력 교회의 권위는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흑사병과 아비뇽 유수 등으로 중세 신 중심에서 르네상스 인간 중심 세계관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14세기 르네상스 미술사 시대 흐름 속에 달라진 교회의 영향력을 자세히 … 더 읽기

르네상스 미술사: 교황이 비운 70년과 로마 귀환이 만든 르네상스

1309년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프랑스 출신 교황을 선출하고 아비뇽으로 이전하게 한 아비뇽 유수. 이후 로마는 황폐해졌고 반대로 피렌체는 교황청 자금을 운용하는 금융업으로 성장하며 독립적인 예술 후원 문화로 르네상스 미술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1377년 교황이 로마로 귀환하면서 바티칸 재건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르네상스 미술사 중심이 피렌체에서 로마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파란만장했던 70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교황청이 … 더 읽기

르네상스 미술사: 신이 막지 못한 흑사병이 바꾼 유럽, 르네상스의 탄생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의술이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신이 이 재앙을 막지 못했다고 사람들은 인식했습니다. 그 충격이 신 중심 세계관을 흔들고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내 르네상스 미술사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인구 감소는 임금 상승과 상업 성장으로 이어졌고 부를 축적한 계층이 예술 후원으로 연결되며 사회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흑사병 이후 유럽 사회가 어떻게 … 더 읽기

르네상스 미술사: 예술에 투자한 메디치 가문 르네상스의 황금기를 열다

중세 길드가 열정페이였다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은 비로소 예술가와 계약관계가 성립된 르네상스 미술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을 위한 의뢰였기에 완전히 대등한 계약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술가의 창작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메디치 가문의 활동 기반과 예술 후원 배경, 르네상스 미술사 발전의 역사적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사 … 더 읽기

르네상스 미술사: 강렬한 색채와 역동성을 표현한 티치아노 성모 승천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티치아노가 성모 승천을 완성했을 때 수도원은 사도들이 너무 거칠다는 이유로 반대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티치아노의 고집으로 작품은 프라리 성당 주제단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치형 상단을 감싸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작품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멀리서도 붉은 의상과 역광이 강렬한 색채와 역동성으로 압도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성모 승천 속 인물들의 표정을 따라 티치아노의 스토리를 살펴보겠습니다. 티치아노 성모 승천의 … 더 읽기

르네상스 미술사: 조각처럼 표현하는 회화기법 그리자유

흑백 필름, 모노크롬 룩, 블랙에디션 등 이런 모노톤을 보고 있으면 화려하지 않지만 세련되고 무게감 있는 강렬함이 느껴지는 것을 우리는 선호하기도 합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서도 같은 감각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색채감 중에 포인트로 모노톤만으로 실제 조각상처럼 보이는 입체감을 만들어낸 그리자유 기법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북유럽과 이탈리아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발전한 그리자유의 원리와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자유 기법의 개념과 기술적 … 더 읽기

르네상스 미술사:최후의 심판에 영향을 준 화가 루카 시뇨렐리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최후의 심판은 르네상스 미술사 최고의 걸작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첫 번째 버전이 아닙니다. 약 40년 전 완성된 최후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오르비에토 대성당에 머물며 루카 시뇨렐리의 프레스코화를 상당 기간 연구하고 돌아와 완성한 것이 시스티나 최후의 심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미켈란젤로에게 영감을 준 루카 시뇨렐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루카 시뇨렐리는 누구인가 루카 … 더 읽기

르네상스 미술사: 눈금자로 인체를 측정한 예술가들의 해부학 표현 기법

“자연이 낸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다 빈치가 본인의 작품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에 대한 설명의 일부입니다. 고대 인체 비례론에 그치지 않고 눈금자로 직접 측정하며 글로 적어 두었던 작품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 예술가들은 당시 인체에 대한 연구를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깊이로 연구했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인체 해부학 표현 기법이 어떻게 발전하였고 화가들의 작품에 어떤 변화를 … 더 읽기

르네상스 미술사: 하늘을 향한 고딕 양식에서 인간을 향한 르네상스로의 변화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고딕과 르네상스의 극적 대비를 보여주는 두 성당. 노틀담과 성 베드로, 높은 기둥과 스테인드글라스의 고딕, 프레스코화로 돔까지 채운 성 베드로의 르네상스 양식. 중세 권위적인 신 중심 가치관이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거쳐 인문주의 사상으로 전환되며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전환되는 배경과 르네상스 미술사에 미친 영향 등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고딕 … 더 읽기

르네상스 미술사: 베네치아 화파가 북유럽 플랑드르 회화에 남긴 영향

플랑드르는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에 걸쳐 있던 지역으로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북유럽 회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최대 무역도시 앤트워프를 중심으로 바다 건너 베네치아와 교역하면서 안료와 직물은 베네치아로, 베네치아 화파의 색채 기법은 플랑드르로 유입되어 플랑드르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르네상스 미술사 대표 도시 베네치아와 플랑드르의 관계가 북유럽 르네상스의 중심 플랑드르 회화에 미친 영향과 이후 탄생한 거장들까지 살펴보겠습니다. 플랑드르의 … 더 읽기